Retrotopia, Seoul (2021 ~ Present)
저는 서울을 걷다보면 을지로를 자주 방문하게 됩니다. 그곳은 고유한 냄새와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예전 모습 그대로 현재를 살아가는 신화로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에요. 어두운 밤 골목길을 혼자 거닐다 보면 특유의 냄새가 저를 감싸고 정적이 흐르는 순간 굽은 골목의 정취가 눈에 들어오면서 무언가 오한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온갖 오래된 거리의 고유한 악취와 윤곽, 그리고 색을 찾아 나섭니다. 이렇듯 우리는 각자의 시각과 방식으로 서울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많은 침략을 당해왔고 그런 과정을 거쳐오면서 많은 자료가 소실되어 한국의 전통적 미의식에 관한 자료 또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통해 전통적인 미의식의 흐름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죠. 이는 일본의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같은 대표적인 미학이 오늘날까지 전통적으로 계승되어 온 것과 대비됩니다. 여기서 곰곰히 일반적인 한국의 전통적 미에 대한 정서를 떠올려보면 누구나 알고 있듯 모순을 승화하여 묘한 아름다움을 찾는 ‘한(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恨)’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의미와 슬픔이 담겨 있지만 이것이 승화되는 순간 아름다움이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예측 불가능한 거리 속 온갖 것들에 빠져들게 되고 ‘한(恨)’의 미학이 발견되는 순간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 도심의 어두운 뒷골목, 고층 건물이 늘어선 넓은 대로, 오래된 전통 시장 등에서 도시 속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도시의 폭력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과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진 속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를 현실 세계로 확장하면 낮과 밤, 진실과 거짓 등 양면성을 가지고 모순되지만 항상 서로를 동반하며 함께 지속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시 또한 새롭게 태어나는 곳이 있다면 오래된 골목이 있고, 낯설고 외롭지만 익숙하여 위안이 되는 그런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서울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일상에서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순간을 탐구합니다.